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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현장의 두 가지 토론 논제
작성 : brassnews   2014-04-02 16:30    조회 : 490    추천 : 0   

음악 현장의 두 가지 토론 논제

/ 김규현(본지주필, 총회신대원 교수, 한국음악비평가협회 회장)

 

1. 빛바랜 문화주간지금도 필요한가

21세기의 우리나라는 어느 시대보다도 최첨단을 달리고 있고 인터넷의 발달로 세계 지구촌의 한 선진국가로 앞서가고 있다. 이럼에도 불구하고 작금에 정부 관리들, 특히 문화부 관료들은 시대인식이 제대로 안되어 있고 과거 것만을 붙들고 놓지 않는 인상을 주고 있다. 과거정권시절에는 문화를 널리 알리고 국민들에게 문화인식을 높이기 위해서 문화운동이나 문화 활성화 캠페인을 문화의 달이라는 명목으로 벌린 일이 있었다. 그때 당시에는 그것이 설득력이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에 와서도 과거 같이 문화주간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사시사철 매일 눈만 뜨면 문화를 접하고 그것을 생활하고 있는 이 마당에 정부가 주기적으로 문화주간을 지정해 놓고 국민들한테 문화를 생각해달라고 강요하는 듯 한 인상을 주고 있는 주고 있는 것은 성숙한 정부의 자세는 아니다. 선진국가로 자처하는 한국정부의 문화부가 스스로 후진국성 행태를 자초해서야 되겠는가. 전국에 많은 예술축제나 무대공연이 하루가 멀다 하고 열리고 있기 때문에 문화주간은 그 명분과 존재가치를 상실하고 있다. 문화주간이니 하며 내용 없는 행사로 떠벌이거나 법석만 떠는 것은 그렇게 좋은 모습은 아니다. 시대변화에 맞는 자신들의 요구가 정당한지를 먼저 인지하고 그 필요성을 주장해야 한다. 세계 어디를 가도 이런 촌스러운 문화주간 같은 것은 없다. 왜들 이런 것을 고집하고 있는지 한심하기까지 하다. 매년 365일이 문화주간이 되도록 해야 한다. 최근에 와서 다행히 지역들이 상설무대나 지역적인 예술축제가 일반화돼가고 있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먼저 정부가 성실한 공연연주단체들한테 지원을 해주는 것이 현명할 것 같다. 문화의 도약과 발전은 정확한 판단과 미래지향적인 사고와 인지가 전제되었을 때 가능할 수가 있다. 과거의 필요했던 것이 현재도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다. 빛바랜 문화주간 간판의 모순을 이제라도 정부의 문화정책관계자들은 정확히 인지하고 낡은 가판을 제발 내려야 될 것이다. 언제까지 우리나라 국민들을 문화 미개인으로 만들려고 하는가, 365일 모든 날들이 문화의 날이 되게 해야 한다. 안방에서는 TV가 문화를 알리고 공연장 무대에서는 수많은 예술들이 꽃을 피우고 있는데 여기다가 문화주간을 강요해서 어쩌자는 건가. 정부 스스로가 성숙한 사고를 가지고 문화발전을 위해서 일조를 해야 한다. 최첨단의 통신매체들이 개발되어 공존하는 시대에 정부가 불필요한 문화주간을 고집해서 문화발전에 협조적 방해자가 되는 일이 없어야겠다.

 

2. 이유 있는 전문평문으로 평론계 위상정립을 제의한다.

국내 음악 평론계가 적지 않은 비평역사(80여년)와 과거 선배 평론가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정체현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은 그 원인이 무엇 때문인가. 그리고 그동안(20세기) 평론계의 비평행위가 음악인들의 입맛 돋구어 주는 인상비평문쓰기와 등 두들겨 주기식 상주기로 음악계에 보였던 것을 부끄럽게 생각해야 한다. 물론 비평계가 국내 음악계의 발전을 가져오게끔 한 순기능을 한 것이 없는 것은 아니다. 비평과 평가 기능이란 특수성을 갖고 있는 비평계는 음악계에 부담스러운 존재다. 이럼에도 불구하고 음악가들은 평론가들과 함께 음악문화를 발전시켜 왔다. 음악문화가 발전하려면 음악가와 평론가는 항상 공존해야만 한다. 그런데 현재 우리나라 음악계는 음악인들과 평론가 사이에 괴리현상과 반목, 그리고 불신이 쌓여만 가는 것 같다. 이 원인은 평론가들의 타당성 있고 정확한 비평행위가 전문성이 결여되고 평가를 제대로 못 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서로 반목과 불신으로 일관한다면 음악 문화 발전은 요원할 수밖에 없다. 반목과 불신을 하지 말고 반비평문쓰기 풍토를 만들어 자신들의 정확한 의견개진을 해야만 정상이고 이런 건전한 논쟁은 음악문화 발전을 가져올 수 있고 성숙된 음악인들의 모습이 될 수가 있다. 자신에게 불리한 비평을 했다고 해서 전화로 감정을 갖고 항의를 한다든지 면전에서 삿대질을 하며 이성을 잃는 행동을 하는 것은 소인배들이나 하는 짓이다. 잘못된 것이 있으면 반론으로 그 불합리성을 정확히 제시하는 것이 배운 지식인의 행동이다. 일부 급조된 평론가들의 저급한 함량미달의 평문이 음악인들의 신경을 건드린 경우가 있기는 했다. 그리고 칭찬일변도의 주례사 수준의 인상비평문도 문제가 있기는 하다. 이런 아마추어 수준의 평론가를 일부 음악잡지나 신문사들이 양산하는데 한 몫을 하고 있는 것도 큰 문제다. 이제 평론계는 과거의 구태의연한 모습을 버리고 새롭게 태어나 자신들의 위상정립을 해가야만 한다. 전문 평론가로서 전문성 있는 평문을 써야 될 것이고 또한 평론가로서 자질도 갖추어야만 할 것이다. 그렇지 못한 아마추어 수준의 평론가라면 음악가들이 음악계에서 퇴출시켜야 한다. 그리고 오늘날 원고지 7~10매 정도의 작은 평문양식도 이제는 규모가 큰 전문성 있는 평문양식으로 변해야만 한다. 더 구체적이고 더 논리적 분석적인 전문평문이 나와야 한다. 일부 일간지 문화부 기자들의 감상문 수준의 리뷰(Review)의 평문수준은 벗어나야 한다. 독자들과 청중들에게 음악평가에 대한 혼란을 가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음악전문가라고 할 수 없는 문화부 기자들이 프로 음악가들의 연주회와 창작음악 발표회를 평가 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고 서글픈 일이다.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것은 평론가들의 책임이 크다. 저질과 함량미달의 평문을 쓰고도 책임의식과 양심이 없는 저질 평론가들 때문이다. 또한 생각했으면 하는 논제는 평론단체들이 평론단체답게 개성과 특성을 갖고 활동했으면 하는 것이 그것이다. 고만고만한 평범한 단체로만이 머물고 있는 것은 진정한 평론계의 모습이 아니다. 평론계는 음악계의 강한 견제기능을 할 때 음악계가 발전할 수가 있다. 이를 위해서 평론가들의 노력이 필요하다. 음악평론은 아무나하는 글장난이 아니다. 몇 편 평문을 썼다고 해서 평론가가 되는 것도 우스운 일이다. 이제라도 사이비나 저질 평론가행세를 하는 벙어리 평론가들을 이제는 음악계 발전을 위해서 퇴출시켜야 한다. 평론계는 이제라도 이유 있는 전문성 평론으로 평론계 위상수립을 해 갈 것을 제의해 본다.